top of page

잊어버린 너를 찾아서

w. 이나

  여름방학이 끝나갈 때 즈음 등하교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방을 구하기 시작했다. 혼자 산다고 한들 따로 집안에 작업실을 만들기 위해 원룸이 아닌 투룸으로 구하기 위해 학교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하아- 하지만 여태까지 팍 꽂히는 집이 없어 오늘도 실패인가 싶어 축 처져있을 때 돌아가는 길, 한 집이 눈에 띄었다. 걸음을 멈추고 더 자세히 바라봤지만 도무지 시선을 뗄 수 없는 집이었다. 조금 걸음을 옮기자 숨어있던 2층에 툭 튀어나와있는 방에 위치한 창문이 보였다, 창문을 열었을 때를 상상하며 그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붉은 해가 지는 모습이 보였다. 아, 저 집이다. 분명 저곳을 작업실로 쓰게 된다면 하루하루 새로운 영감이 솟아날 것 같은 그런 느낌에 눈을 반짝거렸다. 넋을 놓고 집을 바라보고 있자 뒤늦게 자신을 따라오지 않은 레오를 발견하고는 조용히 전화를 걸었다.

저기 봐보실래요? 어느새 전화를 끊은 공인중개사는 레오가 바라보던 집을 가리키며 물어봤다. 마침 어제 집을 내놓은 상태라 바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레오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더니 앞장서 집을 향했다.

문을 열어주자 먼저 들어간 레오는 집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밖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좋아 보였고 안에 인테리어도 당장 들어와도 상관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혼자 살기에는 조금 큰 감이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이곳에 마음을 뺏겨버린 레오는 당장 계약하자며 다시 한번 눈을 반짝였다, 빠른 선택에 당황한 중개사는 2층도 한번 가보라며 이것저것 말해봤지만 지금의 레오에게는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놓친다면 금방 없어질 것 같은 느낌에 서둘러 진행하려는 레오의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알겠다며 집을 나섰다.

 

 

 

*

                                                                                                                              

 

 

새로운 집에 하나둘씩 채워지는 물건들, 이제서야 내 집인 게 실감 났다. 모든 짐들이 도착하고 나서야 한숨 돌릴 겸 먼저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처음 이 집을 봤을 때 2층에 위치한 방 하나에 꽂힌 거였지만 막상 집안을 구경했을 때에는 놓치면 안 된다는 급한 마음에 구경하지도 못하고 덜컥 계약해버려 결국 보지 못한 방이 이곳에 오기 전 내내 궁금했었다. 과연 상상했던 것처럼 정말 끝내줄까 아니면 예상외로 별로일까 머릿속에서 두 개의 의견이 서로 쟁쟁히 부딪쳤다.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2층 끝 방 앞에 섰다. 윽-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문이 삐거덕 거리며 열렸다. 오랫동안 건들지 않은 모양인지 힘겹게 문을 열어 방에 들어서자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창문으로 추정되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밖에서 볼 때에는 꽤 전망이 좋아 보였는데 막아 둔 것에 의야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어찌나 많이 붙여놓은 건지 떼도 떼도 새로운 테이프가 계속해서 보여왔다. 손에 끈적한 끈끈이가 묻어와 기분이 썩 좋지 않아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손이 멈추지 않았다. 왜 막아둔 걸까~ 나도 모르게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뜯자 어느새 바닥에 테이프가 쌓여갔고 문에 붙어있는 것 역시 끝이 보였다. 마지막 하나, 서툰 손길로 조심히 제거했다. 끼익-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아까와 같은 꽤나 낡은 듯한 소리가 났다. 녹슨 문소리, 기분 나쁜 소리였다. 하지만 그 뒤로 들려오는 소리는 문소리와는 다르게 특유에 파도 칠 때 바닥에 부딪치며 나는 물소리와 모래가 축축하게 젖어드는 흙냄새가 훅 밀려왔다. 쏟아지는 빛에 눈부셔 살짝 찡그리며 보이는 시야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보였다. 해가 쨍쨍하게 내리쬐며 그에 맞게 빛내주는 바다와 모래사장이 반짝반짝거렸다. 방금까지 느꼈던 불쾌한 더운 공기가 아닌 시원한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누가 봐도 아름다운 풍경에 홀린 듯 창문 밖으로 손을 뻗으니 얇은 막이 일렁이더니 공간이 바뀌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바로 손만 뻗으면 물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지만 손을 뻗는 순간 전체적으로 멀어진 느낌이었다. 마치 해안가에 온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은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사람이 생겼다. 회색 머리를 가진 남자, 바다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그를 보고는 그대로 창을 넘어 뛰어들어갔다.

모래사장에 발바닥이 닿자 푹 빠지는 느낌과 함께 따듯하게 데워진 모래가 발을 감싸 안았다. 따듯하다. 발가락을 꼬물거리며 모래를 느끼다 앞에 보이는 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안녕!

 

 

“하아? 너 여기 어떻게 왔어”

 

“너 정말 이쁘게 생겼다! 난 츠키나가 레오 넌?”

 

“아니 어떻게 왔냐니까?”

 

“응?”

 

 

전혀 말이 통하지 않은 레오를 보고는 답답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째려보는 그와 다르게 눈을 빛내며 부담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레오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세나 이즈미. 오옷! 원하는 대답을 듣자 감탄하며 이즈미 손을 덥석 잡아왔다. 정말 이쁘다는 등의 말을 내뱉으면서 악수를 하는 행동에 손을 빼려 했지만 꽤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레오의 표정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웃는 게 더 이쁘잖아! 왜 여기 혼자 있는 거야? 친구 없어? 그럼 나랑 친구할래?”

 

“하? 그거 실례되는 말이거든?”

 

 

앗 미안 미안~ 능청스럽게 넘기는 레오, 인상 쓰고 있는 이즈미 표정은 신경 쓰지 않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분명 처음 본 사람인데 몇 년은 본 것처럼 행동하는 레오에 기운이 쭉 빠졌다. 신경직적으로 레오를 내치며 오지 말라고 말하는 이즈미 행동에도 알겠다며 말만 할 뿐 다음 날 또 오는 그에 골머리가 썩었다. 아니 오지 말라니까? 항상 말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여놓고는 매일같이 찾아와 해가 떨어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가는 게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곳에 간다고 한들 보통은 바다를 바라만 보는 이즈미가 입을 여는 건 극히 드물었고 거의 혼자 말을 이어가다시피 하지만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실실 웃다가 '다음에 또 올게!' 라 말하고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에 오고 있다.

 

 

세나! 오늘 말이야~

세나~ 이거 선물!

오늘도 이쁘네 세나~

 

세나~

 

 

지치지도 않는지 새로운 것들을 가져오며 눈만 뜨면 와서는 해가 질 때가 돼서야 돌아간다. 하지만 갈 때 꼭 잊지 않는 말, '내일 봐!'라며 해맑게 손을 흔들고 이즈미가 받아줘야만 그제서야 가기 싫다며 느릿하게 창밖으로 넘어간다. 그래도 전에 한번 개학을 했음에도 불구 하고 이곳에 오는 탓에 학교를 갔다 오라고 안 그러면 너를 보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논 뒤로는 등교는 성실하게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뭐가 그리 급한지 항상 가방만 버리고 교복 차림으로 이곳에 넘어오기 일쑤였다. 모래로 인해 더러워진 교복에 옷 정도는 갈아입고 오라고 하자 그제서야 정말 옷만 갈아입고는 평소보다 급하게 넘어온다.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다는 낯간지러운 말을 하며 말이다.

 

 

 

 

전과 다르게 혼자 있는 시간보다 사람과 있는 게 더 익숙해져 버린 순간, 평소와 같이 레오가 여기서 작곡하는 걸 평화롭게 구경하던 중,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확 끼쳐왔다. 꼭 좋을 때 무슨 일 생기는 것처럼, 혹시라도 내가 행복한 것에 질투 난 신이 지금 가진 행복들을 다 가져갈까 봐, 레오 역시 그들처럼 이곳에 오지 않을까 불안해져왔다. 작년에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모르는 이에 의해 닫겨버린 문, 마지막까지 그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떠나버릴 때 문이 닫기는 그 순간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절망감에 혼자 울며 보내버린 세월이 준 교훈이었다. 절대 그전과 같은 일이 생기면 안 된다고.

 

 

“레오군, 이제 여기 오는 거 좀 자제하는 게 어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알겠다며 능청스럽게 대답하는 그의 말을 끊으며 이어 말했다. 진심이야. 항상 눈을 피해왔던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레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달라진 이즈미에 행동에 눈치를 챘는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싹 사라지더니 제법 진지한 얼굴로 바뀌었다.

 

 

“무슨 일이야?”

 

 

엎드려있던 자세를 고쳐앉으며 묻는 그의 표정은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진지한 표정,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뚫어지게 이즈미를 쳐다보는 눈은 말하기 전까지는 거둬지지 않을 것 같아 결국 입술을 우물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 전에도..라며 운을 뗀 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여태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창문을 통해 이곳에 온 게 레오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창문에 존재를 들키면 이곳으로 오는 방법이 사라진다는 것, 등의 이야기를 했다. 말하는 동안 아무 말 없이 듣던 레오는 말이 끝나자 이즈미에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걱정됐냐며 나지막하게 말하자 그게 또 따듯해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고개를 푹 숙이고는 말없이 위아래로 끄덕였다.

 

 

“뭐 그럴 일 없으니까~ 만약 사라진다고 해도 내가 다시 찾을 거야! 약속할게! 그러니 만약 창문이 사라진다고 해도 날 기다려줘 꼭 찾으러 올게”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약속하자는 그의 말에 철석같이 믿고는 새끼손가락을 걸며 웃었을 때 이후에도 정말 그들과는 다르게 오랫동안 보이는 레오를 보며 안심했지만, 하지만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른 날과 다를 것 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그에게 줄 조개를 찾기 위해 모래사장을 뒤졌다. 항상 받기만 해 보답을 해주고 싶어 그가 준거에 비해 훨씬 초라하지만 나름대로 제일 이쁘고 빛나는 조개들로 손수건에 골라 담았다. 내가 봐왔던 레오라면 이것조차 웃으며 받아줄 테니, 레오의 얼굴을 떠오르니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에 손부채질을 하며 마저 찾았다. 이 정도면 뭐.. 비록 조개껍데기지만 모여있으니 빛나는 게 제법 이뻐 보였다. 작게 웃으며 평소와 같이 문이 열리는 근처에 앉아 기다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소중한 듯 꼭 쥔 조개껍질이 있다는 것, 전에 레오가 선물로 준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가만히 그를 기다렸다. 처음 이곳에 와 파도 소리를 들었을 때 영감을 받고 쓴 거라고 했던 것에 맞게 파도치는 소리와 멜로디가 어우러졌다. 눈을 감고 파도 소리에 집중하며 흥얼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의해 눈을 번뜩 떴다. 창문이 열리는 특유에 바람소리, 평소 시간보다 빨리 열린 문에 놀라 뒤를 돌아보자, 기다렸던 레오가 아닌 처음 보는 이가 창문 앞에 서있었다. 뭐야, 결국.. 모르는 이 뒤에서 나오는 레오, 손에 쥐고 있던 접시를 떨어트리자 맑은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났다. 놀란 표정을 지으며 파편들을 밟으며 창문을 향해 뛰어들었다. 바보 피나잖아... 창 너머로 보이는 레오 방바닥에 선명하게 찍힌 핏자국과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 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구나.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고, 그의 손이 창문에 닿자 처음과 같이 막이 일렁이더니 서서히 풍경은 사라졌다. 안녕, 레오군.

 

 

“세나...”

 

 

던지다시피 한 몸은 결국 닿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창밖으로 향한 손은 닿아야 하는 모래가 아닌 공중에 떠버렸다. 할 일을 끝마치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에 큰 기쁨이었는데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마치 세상을 잃은 것 같았다. 좌절한 그의 모습을 보던 리츠는 쓰러지듯 엎어져있는 레오를 잡아 일으켰다. 괜찮아 왕님?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고개를 휙 든 레오는 난데없이 영감이 떠올랐다며 방을 나섰다. 꿈이 아니라는 걸 레오가 걸을 때마다 찍히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아까 일을 말해주고 있었다.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싶어 급하게 따라 나갔지만 거실에서 옆드려 작곡을 하는 그의 모습이 평소와 같아 이상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울듯이 좌절하며 세나라는 이의 이름을 불러댔으면서 이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작곡을 하고 있다. 바닥에 있는 모래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며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 있는 모래를 내가 위로해줄겟! 라며 술술 써 내려갔다. 아까와 확연히 다른 행동에 의야하며 레오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왕님 세나가 누구야?”

 

 

엎드려 있는 그의 옆에 자리 잡아 앉으며 물었다. 꼭 기억을 잃어버린 것처럼 행동하니 알아보기 위해 아까 레오가 소리쳤던 이에 이름을 물어봤다. 마지막까지 그렇게 소리친 것 보니 꽤나 중요한 것 같으니 아무리 태연한척하려 해도 이름을 들으면 움찔하겠거니 싶어 말을 꺼냈지만 돌아오는 것은 예상에서 정확히 빗나갔다. 작곡을 하던 손을 멈추지 않고 모른다는 어투로 대답했다. 다시 한번 똑같이 세나를 아냐며 물어봤지만 모른다니까! 지금 세기의 명곡이 탄생하는 순간이라고~ 건들지마! 라며 못을 박아버렸다. 워낙 작곡하는 동안에 건드는 걸 싫어하고 말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다 보니 못 들은걸 수도 있기에 발에 박힌 조각이라고 빼줄 생각으로 구급상자를 찾았다.

나름대로에 처치가 다 끝나고 난 뒤에도 작곡에 열기는 식을 기미가 안 보였다. 오히려 이 뒤는 너닷! 라며 더 불타오르는 그의 눈은 사냥감을 찾은 맹수처럼 번쩍 빛나 보였다. 물어보는 건 조금 있다로 미루고 하암~ 입이 찢어져라 나오는 하품에 조금 눈을 붙일 생각으로 푹신한 소파를 찾아 누웠다.

 

 

“릿~츠 들어가서 자”

 

 

분명 조금만 잘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밖은 해가 지고 있는지 몸이 조금은 가뿐해졌다. 작곡을 끝 맞췄는지 종이를 정리하며 말하는 레오의 행동을 보고 머릿속에 팟 하고 떠올랐다. 지금이라면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최대한 태연하게 아까와는 다르게 툭 던지듯이 물었다. 왕~님 세나가 누구냐고~ 기지개를 쭉 펴며 묻자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은 고민하는듯한 표정이었다. 고민을 한다는 것은 아까와는 다른 대답이 돌아오겠거니 조금의 희망을 가졌지만 레오에 대답에 희망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뭐, 아까와는 다른 대답이긴 했다. 아까보다 정확한 대답이 돌아왔다.

 

 

“음.. 진짜 모르겠는걸? 난 중요한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다구! 하지만 모르는 걸 보니까.. 별로 중요하지 않은가 봐?!”

 

 

단호하게 모른다는 묵직한 못을 박아버리니 더 이상 할 말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애처롭게 불렀으면서 중요하지 않는다니 말이 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레오를 쳐다보니 리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이 늦었으니 여기서 자고 가라며 한 방을 가리켰다.

 

 

 

 

그 뒤로 계속 그때 들었던 세나를 부르며 레오에게 물어봤지만 요즘 이상하다는 소리만 들은 채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 그때 이후로 멀쩡한 듯 하지만 묘하게 이상해진 레오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는 마당이라 더 불편했다. 아..! 갑자기 머릿속에 전구가 팟하고 켜진 것처럼 좋은 생각이 났다. 정말 기억을 잃어버린 거라면 다시 찾게 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 백날 말해도 소용이 없으니 방법은 딱 한 가지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수밖에,

 

 

 

*

 

 

 

"츠키나가군"

 

"앗 레이다 오랜만이야~"

 

"응 오랜만이구먼 그런데 뭔가 잊어버린 거 없누"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거 없는데? 잊어버린 거? 앗! 잊어버렸다고?! 잊어버린 외계인을 찾아서! 와하하하하하 역시 난 천재라니까~ 떠올라버렸어!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외계인의 입장이 되어 써주겠어! 이건 분명 명작일 거라고~!"

 

 

레이의 말을 듣고 난 뒤 뜬금없이 여러 말을 하며 다양한 표정을 짓고는 고맙다며 손을 흔들며 뛰어갔다. 점점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됐겠지. 그의 말을 들었을 리가 없는 레오는 어느새 레이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재미있다며 작게 웃자 뒤에서 불쑥 건네는 토마토주스에 활짝 웃었다. 막상 건네는 이 표정은 웃는 레이와 다르게 무표정이었지만, 레이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아 시끄러워. 토마토주스를 마시는 모습을 보던 그는 바로 뒤돌아 떠났고 아쉬운 표정을 짓던 레이 역시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 밖을 벗어난 레오는 손에 펜을 쥐며 돌아다녔다. 한여름에 해가 가장 높게 떠있을 시간인데도 덥지도 않은지 후드티를 펄럭거리며 뛰어다녔다. 저번에 릿츠가 알려준 곳이.. 단순히 큰 나무라는 것만 기억하고는 학교 근처에 나무란 나무는 다 찾아봤다. 우웃.. 여기서 그냥 할까.. 안돼! 완성되기도 전에 내가 쓰러지면 무슨 소용이야! 찾아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 포기하고 땅바닥에 누워 할까 했지만 영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것같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더위를 안 탄다고 한들 운동장에서 누워 있다면 다 완성하지도 못하고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방해하는 사람들이 생길 테니 그게 제일 용납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당장 눕고 싶은 욕구를 참으며 풀을 헤쳐 안으로 들어갔다. 무성한 풀들을 지나 들어가니 시원한 바람이 훅 불어왔다. 아하하 드디어 찾았다! 릿츠가 말한 장소! 들었던 것처럼 정말 큰 나무였다. 어찌나 크고 무성한지 햇빛을 막아줘 큰 그늘이 생겨나있었고 주변에 들리는 참새 소리까지 완벽했다. 정말 이곳에 있는다면 없던 영감들이 떠오를 만한 그런 곳이었다. 감탄하며 안으로 들어가 나무 바로 옆에 자리 잡아 누웠다. 주머니에 대충 넣어둔 종이들을 하나둘씩 꺼내 쓸 수 있을 정도로만 핀 뒤 아까 받았던 영감을 종이에 술술 써 내려갔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선선하게 부는 바람과 풀 내음을 느꼈다. 외계인은 정말 좋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마치 이곳처럼~ 발을 이리저리 흔들며 이야기를 풀 듯 말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날 까먹어버렸어..! 오옷 누가 들었으면 미쳤다고 할법하지만 아무도 없는 이곳은 완전히 레오의 공간이었다.

이리저리 움직이던 발이 멈추고 완성된 것인지 누워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악보를 찬찬히 정리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는 눈물 한 방울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곧 악보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세나? 자신 머릿속에 맴도는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 불러봤다. 작곡 중 세나라는 이름이 생각나서부터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수도꼭지가 터진 마냥 미친 듯이 흘렀다. 손에 쥔 악보를 치울 생각도 못 하고 계속해서 눈물만 흘리자 아직 굳지 않은 잉크가 눈물에 의해 번져 알아볼 수 없게 됐다. 악보를 쥔 손이 떨리며 레이의 말이 떠올랐다. '잊어버린 거 없누'

부스럭-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누구인지 확인했다. 릿츠.. 세나가 누군지 알아?

 

 

“왕님이 찾아야 할 사람”

 

 

리츠의 말이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달렸다. 머릿속에는 그 방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갑자기 왜 생각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으로는 거기에 이 상황을 해결해줄 열쇠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옷에 묻은 풀을 털 생각도 못 한 채 앞만 보고 뛰었다.

도착한 집 앞, 급한 손길로 도어록 비밀번호를 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틀리는 비밀번호에 쾅 치며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문이 열렸다. 신발을 벗을 생각도 못 한 채 2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가며 어느 순간부터 안 들어가게 된 방 문 앞으로 걸어갔다. 이곳에 모든 원인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곳이다 보니, 한치에 망설임 없이 바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안에 있는 먼지가 바람을 타고 날라와 코를 간지럽혔다. 소매로 코를 막고 안으로 들어오고 난 뒤의 앞에 보이는 상황에 말을 잃었다. 바닥이 온통 모래투성이에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파편들, 까맣게 굳어있는 알 수 없는 자국,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쌓여있는 먼지가 움직일 때마다 좁은 방안에 날아다녔다. 레오는 이것들 보다 중요한 게 있기에 애써 무시하고는 먼지로 뒤덮인 책상을 향해 달려갔다. 분명 여기에 있을 텐데.. 혼잣말을 하며 책상 서랍을 뒤지다 종이 다발에 의해 닫히지 못하고 튀어나와있는 서랍이 눈에 띄었다. 여기다!

서랍 문을 열자 좁은 서랍 안에 꾸역꾸역 들어가 있는 악보와 사진들이 튀어나왔다. 내 기억에 없는 것들,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사진 다발을 꺼내보니 사진 속에는 해변가에 회색 머리를 지닌 남자가 앉아있었다. 천천히 넘긴 다음 사진에는 그 남자의 앞 모습, 누워있는 모습, 등 그 많은 사진들 속에 해변가에 있는 회색 머리 남자가 빠지지 않았다. 같은 해변가에 있는 남자가 내가 궁금했던,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던 그 이름의 주인인, 바로 세나라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뒤이어 악보들을 확인하며 겨우 멈췄던 눈물이 다시 한번 흘렀다. 내가 잃어버린 기억들이 모두 여기에 잠들어있었다. 창문의 존재을 들키며 안된다며 그렇게 주위를 줬지만 리츠에게 들켜버린 그날, 세상이 무너질듯한 감정을 그 잠깐 느끼고 나서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진 기억으로 인해 그를 이 오랜 시간 동안 혼자 두게 만들었다. 마치 내가 쓴 곡 속의 외계인처럼.

찾아야 해.. 손에 가득 쥐었던 악보와 사진을 책상 위에 놓고 한 장에 사진만 쥔 채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옮겼다. 그곳이 어디인지 하루빨리 찾아야 했다. 급한 손길로 화면을 켜 인터넷 창에 생각나는 것들을 다 쳐봤다. 해안가, 사람이 없는 해안가. 등등 생각나는 주변 환경은 다 쳐봤다. 쓸데없는 것까지 다 쳐보면서 조금이라도 단서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날씨가 좋으면 보이는 돌섬이나 새가 많다는 것 등 모조리 다 쳐봤다. 세나와 함께 봤던 밤하늘에 별이 무수히 많았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밤하늘이 이쁜 해안가'도 쳐봤다.

 

 

“찾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밤하늘'에 꽤 많은 검색 결과가 떴다. 블로그에 뜬 '신혼여행으로 좋은 여행지'라며 밤하늘이 이쁘다는 칭찬이 자자한 소개 글에 첨부되어있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사진에서 본 해안가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확실히 그곳이었다. 서둘러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한 뒤 사진을 주머니 속에 놓고는 간단히 지갑과 여권만 들고 집을 나섰다.

거리를 나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다짜고짜 탑승했다. 위험천만하게 탑승한 탓에 잔소리를 해오는 기사의 말을 듣지 않은 채 공항으로 얼른 출발해달라며 소리쳤다. 자신의 말을 들은 채도 안 하는 레오를 보던 택시 기사는 한숨을 푹 쉬더니 결국 차를 몰았다. 오랜만에 세나를 볼 생각에 두근두근하면서도 보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됐다. 사실 가장 먼저 자신을 봐 줄 거란 확신은 들지 않아 불안함이 먼저였다. 화가 나 무시할 것 같은 세나에 걱정되면서도 막상 갔는데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서움과 본다는 생각에 기쁨의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덮쳤다. 하아-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도착했다는 기사를 말에 금액을 보지도 않고 지갑에서 가장 금액이 큰 지폐 하나를 건네 택시를 내려 곧장 뛰었다. 손님! 거스름돈 가져가셔야죠! 뒤에서 외치는 기사의 말을 들은 레오는 슬쩍 뒤를 돌아보더니 필요 없다며 소리치고는 곧장 뛰어갔다.

공항 안에 들어온 레오, 티켓을 끊기 위해 눈에 보이는 항공사 데스크로 달려갔다. 가장 빠른 비행기로 주세요! 숨을 고를 채로 없이 카드를 내밀며 티켓을 요구하자 놀란 항공사 직원의 눈이 토끼 눈처럼 커졌다. 8시 퍼스트 클래스 남아있습니다 괜찮... 직원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드를 더 가까이 내밀며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드를 받아든 직원의 여러 요구에 모두 한 뒤에야 카드와 여권과 함께 티켓을 들려주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짐도 안 챙겨왔으니 부칠 필요 없이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출국심사를 끝낸 뒤, 텅 남아버린 시간에 발을 동동 굴렀다. 마음 같아서는 이러고 있는 시간도 세나는 혼자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이 잠깐 사이에 기다리다 지쳐 그곳을 떠날까 봐 불안했다. 이러한 마음에도 정해져 있는 시간을 어찌할 수 없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뒤로 기댔던 몸을 일으키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나오기 전에 주머니 속 안에 사진을 넣어놨던걸 잊고 있었다. 혹시나 구겨졌을까 자세를 다시 바꾸고는 사진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다행히 멀쩡한 사진에 아까와는 다른 안도에 한숨을 쉬었다. 사진 속 안에 밝게 웃고 있는 그를 한번 쓸어내렸다. 이거 찍고 엄청 혼났는데.. 과거를 떠올리며 그와의 추억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세나를 생각하자 다시 흐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슬슬 레오가 타는 게이트 앞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자 사진을 지갑 안에 넣고 몸을 일으켰다. 내가 갈게 세나.

 

 

 

*

 

 

 

이곳에서 다시 혼자가 된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끈질기게 왔던 그는 마지막으로 걱정만 끼치고 보지 못한 지 꽤 지났지만, 아직도 바닥에 찍힌 핏자국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눈에 선했다. 치료는 잘 했을지,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지, 걱정되기만 했다. 바보.. 그러게 들키지 말라니까.. 레오가 좋아하던 밤하늘을 볼 때면 거의 기계적으로 이 말을 내뱉는 것 같았다. 그를 회상하며 흐르는 눈물에 흠칫 놀라 눈물을 훔쳤다, 이씨, 내가 왜 우는데 짜증 나.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잡히는 아무 돌멩이나 물을 향해 던졌다. 어둠 속에 묻힌 바다는 보이지 않고 풍덩- 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별들이 반짝거리는 하늘인데도 불구하고 옆에 그가 없으니 분명 좋아하는 바닷가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 정도면 자신을 잊어버렸을 게 뻔한데 혼자서만 약속을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에 괜히 비참해졌다.

 

 

세나.

 

 

아.. 환청까지 들리네 짜증 나 더 비참하잖아. 다리 사이로 고개를 파묻히며 흐르는 눈물을 멈추려 애썼다, 세나- 다시 한번 들리는 소리, 너무 생각한 탓인지 마치 정말 그가 부르는 것처럼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나, 나 안 볼 거야?

 

 

...! 레오가 사라진 뒤로 느껴보지 못한 등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와 따듯한 체온에 놀라 숙이던 고개를 들어 뒤를 바라봤다. 울컥, 아까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보는 얼굴인데 눈물로 인해 뿌애진 시야에 소매를 길게 늘어트려 눈가 벅벅 닦아냈다. 빨개지잖아, 이즈미의 팔을 잡아 내려 한 손으로는 눈가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믿기지 않는 상황에 이즈미의 얼굴을 잡은 손을 맞잡다가 다시 흐르는 눈물에 그에게 풀썩 안겼다. 느껴보지 못한 체온, 따듯하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왜.. 이제 왔어 기다렸잖아..”

 

 

쏟아지는 눈물을 더 이상 주체하지 못하고 레오의 어깨를 퍽퍽 치자 더 따듯하게 안아오는 그의 품에서 어린아이처럼 크게 눈물을 터트렸다. 계속해서 미안하다며 세나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보고 싶었어 세나, 늦게 와서 미안해.”

 

“나도, 레오군”

이즈.png

이전 페이지로

 © 2019.08.03 leoizu love forever created with LIS_SIBA& WIX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