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마
w. 럄
[이번 주부터 장마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현재 구름의 상태는..]
아아.
이게 몇 번째의 장마 예고인가. 오늘도 예정된 듯한 날씨를 보고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기상청에서 예측하는 구름의 상태가 무색하게도 장마는 이 곳을 찾아오지 않았다. 물론, 세나의 입장에서는 장마가 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오지 않는 것이 더 편했다. 온 몸에 물기가 붙어있는 듯한 그 끈적한 느낌은, 태양빛이 작렬할 때 맺히는 땀으로 충분했으니까. 그런데도 반복되는 기상예보를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이건 세나가 듣는 것이 아니었다. 이건 졸업 직후 이곳에 도착해 집을 겨우 사 놓고서, 왜 사 놓았는지 자신의 집에서 눌어붙어 살고 있는 츠키나가가 튼 기상예보다.
생각해 보니 짜증난다. 장마가 아니더라도 이미 날씨는 습기가 가득 차 있었다. 아침에 짜증이 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일까. 세나가 얼굴에 묻은 식은땀을 팔로 닦으며 츠키나가에게 말을 걸었다.
"아아, 진짜. 레오 군, 그것 좀 안 틀 수 없어? 완전 짜증나는데."
너무 작은 소리로 말해서 거실까지 들리지 않았나, 츠키나가는 방송을 끌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상태라면 머리 끝까지 짜증이 치솟을 게 분명하다. 지금 자신이 짜증을 내지 않으면 츠키나가는 절대 방송을 끄지 않을 테니까. 짜증을 내는 것은 온전히 그 때문이다.
"레오 군! 안 들려? 틀지 말라니까!"
"우왓, 세나! 왜 화를 내!"
"왜 내냐고? 장난해? 이 습기 가득한 아침부터 장마니 뭐니 하는 걸 들어야겠어?"
한숨을 내쉬고 큰 소리를 냈더니 목이 아려왔다. 아침이어서 목이 잠긴 것도 아이돌이었으니까 당연히 알 텐데, 기어이 큰 소리가 오가게 만드는 츠키나가가 원망스러웠다. 츠키나가는 머리를 부여잡은 세나에게 변명인지 정당한 이유인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장마를 미리 준비해 세나의 기분에 거슬리지 않도록 한다던가, 제습기를 사 놓는다던가. 들어맞지도 않는 예보를 가지고 참 잘도 계획을 세운다. 세나가 리모컨을 들고서는 방송을 껐다.
"나를 진정으로 생각했다면 아침부터 저걸 틀지 말았어야지. 나 오늘 새벽에 나가니까, 잠을 자 둬야 한다고."
"나가지 않으면 되잖아?"
"들을수록 짜증나네. 어떻게 안 나가? 이미 잡힌 약속인데."
"지금 비 오는걸?"
"뭐?"
그럴 리가 없다. 장마가 온다고 계속해서 떠들던 예보는 올해 맞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장마가 오지 않을 거고, 오더라도 7월 중반쯤에 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세나였다. 그리고 츠키나가의 말이라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당장 문을 열고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못 할 사실이었다.
그런데, 문을 열고 확인한 창가에는 왜 물방울이 묻어있는지. 세나는 제 눈을 찌푸렸다.
"... 진짜 비 오네."
"새벽까지 비 온다는데, 나가지 않는 게 어때?"
"......"
그건 싫다. 이번 주부터 시작된다더니, 그게 오늘이라고는 어째서 말해주지 않았을까. 왜인지, 오늘따라 츠키나가의 말이 거슬린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나가기 싫다. 그를 제외한 이유는 딱히 없었다.
"싫어."
"나가지 마!"
방금까지는 분명 청유형이었던 문장이 명령형으로 바뀌었다. 흘끗 쳐다본 츠키나가는 걱정과 간절함 등이 서려 있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 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나가지 말라며 자신있게 소리치고서는 저런 눈이라니. 다른 일에서는 마음이 약해지지 않는 세나가 무슨 일인지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거슬리는데.
"내가 우주인에게 부탁해서 비를 내리게 한 거란 말이야. 세나가 안 나가게 하려고! 그러니까 나가지 마! 내 노력을 무색하게 할 참이야?"
"우주인은 무슨.. 그럼 나도 부탁하겠다. 당장 비 그치게 해 달라고."
"세나.. 너무해, 오늘은 세나와 같이 있고 싶단 말이야.."
츠키나가가 한껏 풀이 죽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 표정을 보자면 기껏 누르던 짜증이 다시 나오는 세나였다. 저런 모습이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얼굴만 따지자면 좋다. 문제는 내면이지. 저렇게 속상한 표정을 지어놓고, 안으로는 어떻게든 세나를 밖으로 나가지 못 하게 하려는 속셈을 짜고 있을 것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 사실이 마음에 안 들었다.
반대로 말하면 세나가 말이나 행동으로 저항을 해 봤자, 츠키나가에게 막힌다는 뜻이었다. 여러 모로 생각해도 자신이 불리한 상황이다. 소리나게 신음을 내뱉고서는 침대에 앉았다.
"다시 잘래."
"에, 나가지도 않을 건데 또..? 세나, 나랑 놀자!"
"레오 군과 놀아줄 정도의 시간은 없어. 차라리 잘래."
"......"
분명 그렇게는 말했지만, 역시 그런 말조차 거슬린다. 츠키나가가 세나의 침대에 올라와 세나를 안았다. 세나, 부침개 해 줘. 비가 와서인지 붙어 있을 구실을 만드는 것인지, 츠키나가가 작은 소원을 말하며 세나의 머릿결을 만지작거렸다. 세나 역시 아직 누워 있지 않아서인지, 사실 자고 싶은 생각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 잔다고 말한 것은 그저 평소와 같은 핑계일 뿐이었다. 정말 츠키나가가 자신과 같이 있고 싶어서 우주인에게 소원을 빌었다면,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으니까. 계속해서 머릿결을 만지는 츠키나가의 손을 떼고 부엌으로 발을 옮겼다.
"이번만이야. 너, 내가 이런 거라도 하지 않으면 아침을 안 먹으니까."
역시 아까보다는 한껏 밝아진 표정이다. 츠키나가 역시 가벼운 발걸음으로 침대에서 발을 뗐다.
"고마워! 세나의 사랑을 담은 부침개, 잘 먹을게~."
"사랑을 담는다고는 안 했거든?"
그러면서 손놀림은 평소 음식을 만들 때보다 신중하네. 괜히 말로만 부정하는 것도 귀엽다. 불 근처에 있어서인지 분홍빛인 그의 얼굴에 자신의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 그랬다가는 분명히 부침개가 먹고 싶은 건 핑계였냐는 소리를 듣겠지. 그래도 좋다.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하는 저 세나의 볼에 입맞춤을 해 주고 싶다. 조금만. 정말 잠깐이면 괜찮지 않을까. 그답지 않게 망설이던 츠키나가가 세나의 볼을 만지작거렸다.
"잠깐, 볼 만지지 마. 습기 때문에 가뜩이나 기분 나쁘다고. 입을 맞추는 것도 아니고 만지작거리는 건 뭔데?"
"그거 무슨 뜻이야?"
분명히 내가 잘못 알아들은 건 아니겠지. 얼굴에 알 수 없는 웃음이 피었다.
"입맞추는 건 된다는 소리야?"
역시 그렇다.
세나는 솔직하지 않으니까 무의식적으로 바깥에 드러나는 변화를 눈치채야 한다. 그건 무엇보다 중요한, 같이 살면서 알게 된 세나의 중요한 요점이었다. 게다가, 졸업식이라는 행사를 맞이하고 나서는 그게 더 잘 드러나게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확실하다. 미세하게 떨린 세나의 손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츠키나가와 세나는 서로 입맞춤을 나누고 싶어한다.
"역시 세나는 귀여워."
조금의 자존심 때문인지 세나는 지금도 머뭇거린다. 다 알고 있어. 그러니, 내가 먼저 줘야지.
부침개가 탈지도 모르는데. 서로의 입이 맞물리고 세나의 손이 프라이팬에서 떨어졌다.
